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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인연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사랑한다"곤 말해도 "우린 아무래도 운명인 것같아요" 란 사족을 달지 
않는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물론 처음 만난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해본 건 딱 한번 뿐이지만)

인연은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만약 인연이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이 세계는 정말 각박해졌을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인연은 사람사이의 관계를 뜻하는데 그 관계가 당신이 처음 이 세상의 빛을 볼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당신의 인생 또한 정해져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에 의해 변화되고 또 만나는 사람에 의해 성장한다. 
사회학이 중요한 인문학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 즉 인간들이 만들어 나가는 
불규칙하고도 대단히 우연적인 변화를 예측하고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연을 만들어나가는 것은 그런 사회학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일정한 나이 이전까지는 규칙적이지만 -학창시절이 바로 그 나이대까지가 아닐까-
그 이후에는 굉장히 불규칙해지고 우연해진다. 우연해진다는 것은 만남 자체가 어려워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말이 좀 샜는데 인터넷이 되었건 오프라인이 되었건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이뤄지는 어떠한 화학적 반응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에는 대단히 힘이 드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공식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정답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사회학이나 사회심리학은 인간관계구축에 있어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해줄 뿐이지 그것이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오늘 16시경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날 깨우더라.
그래서 왜 깨우나 했더니, 나한테 전화가 왔단다. 이 병원전화로 말이다.

아니, 나한테 연락할거면 내 핸드폰으로 하면 되는 것인데 왜 이 병원전화로 했을까 의구심을 품으며
전화를 받았는데 이럴수가, 내가 정말 친하게 지내던 2중대 1소대 시절 네 기수 위 선임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나와 동갑인데 내게 빅딜을 제안했던 재밌는 선임이었다.

"야 넌 일본어 잘하니까 일본어를 나한테 가르쳐줘. 그럼 내가 너 남은 군생활동안 70kg까지 만들어줄게"

흔쾌히 응했다. 중장거리 런닝맨 출신인 그 선임과 함께 뛰면 뛸수록 심폐기능이 향상되는 것이 느껴졌다.
느껴지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110kg에 육박했던 나의 몸무게는 부대에 갈때 92kg이었고
그 선임과 운동을 시작한 한달 뒤엔 84kg에 까지 내려갔다. 30kg가까이 감량한 나 자신에게도 놀랐지만
옆에서 묵묵히 멘토역할을 자청한 그 선임에게 너무나도 고마웠기에 나도 거의 전력을 다해 일본어를 알려주었다.
아마 내가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이미 지금쯤 몸무게가 70kg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그때 배운 호흡법이나
런닝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에 부대에 복귀하면 그 방법으로 운동을 다시 열심히 할 것이다. 현재 몸무게는 93kg!)

오늘 임플란트 때문에 (그 선임도 훈련 중 이가 깨져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다) 수도병원에 갔는데 
있어야 할 내가 없어 호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이대목동병원에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병원 전화번호를 일일이 찾아 나에게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군대에서 이런 따뜻한 온정을 기대하기가 참 어렵다고 여기고 있었다. 특히 우리가 보통 군대인가. 
귀신잡는 해병대에서 동기도 아닌 선임에게 부상 쾌유의 전화를 받다니, 감회가 너무나 새로웠고 또 고마워서 
나도 모르게 우리의 금칙어인 "감사합니다"를 쓰고야 말았다. (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전역 후 설명할 일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선임도 그 마음을 알았는 지 그에 대해선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나에게 이 말을 남겼다.

"야 우리가 보통 인연이냐. 해병대 부대가 몇갠데 거기에 같은 대대, 중대, 소대 거기에 같은 생활반까지 했으면 이건 인연이지.
근데 이렇게 가다간 인연의 끈을 놓을 거 같더라고. 그래서 전화했다. 선임 밖에 없지?ㅋㅋ 전화 한 사람 나밖에 없지 않냐?(그렇다고하자)
거봐 내가 짱이라니까. 선임 너 때문에 일본어 공부 계속 하고 있다! 너도 녹슬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근데 시간 진짜 빠르지 않냐? 
난 다음달에 상병인데 넌 언제 상병다냐 (4월이라 대답하자) 그게 보이냐? 보여? 장난이고, 제발 좀 빨리 낫길 빈다. 부대에서 보자! 또 전화할게!"

신께선 딱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상황까지만 그 역할을 해주신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그 우연에 
물론 신이 반드시 개입해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분명 신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옷깃이 
스치는 것까지만 도와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스친 옷깃을 붙잡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돌리셨다. 
정확한 판단이라 생각한다. 인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결정이고 우리의 선택이다. 신께서 그 멋진 우연을
, 재미없게 미리 정해놓으셨을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홍 해병님의 전화를 받고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인연이 우연으로 끝나지 않게 내게 연락해준 홍 해병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감사'합니다

P.s

물론 그녀와의 인연을 사랑으로 발전시킬 그 과정 또한 상상만으로 즐겁고 행복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 1달하고도 약 10일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나는 그녀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포기가 아니다. 몇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녀의 전체적인 부분을 생각하려 한다는 말이다. 

소중한 사랑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노력, 시간이 필요하다. 난 노력은 하려고 했을 지 몰라도 - 사실 노력도 아니고
그냥 허세 - 시간은 완전히 배제한 상태에서 관계형성에만 주력한 나머지 집착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나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었던 그녀의 마음을 돌렸던 주범이라 생각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녀였더라도 나같이 급한 사람과는 만나기 싫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부끄러워졌다. 
동시에 '그날' 겨우겨우 얻어낸 이 1년이라는 시간이 더욱 감사하게 여겨졌다. 적어도 고칠 여운 정도는 나에게 남겨준 셈이니까.
덕분에 난 지금 조급함을 덜어내는 중이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보여주었던 아름다웠던 일부분을 생각하며 그에 걸맞는 남자가
되려 노력하는 중. 적어도 급해지진 않을 것이다, 더이상. 이 모호한 낭만에 나를 건 이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을 것이란
다짐 또한 함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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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nito Esplendido 트랙백 0 : 댓글 0